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시슬러 (문단 편집) == 선수시절 == [[월터 존슨]]을 존경했고, 시슬러 본인도 투수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다.그는 투수로서의 재능도 뛰어났지만, 타자로서의 재능이 더 뛰어났다. 구단은 시슬러가 타자로 뛰기를 원했지만, 시슬러는 투수로 뛰고 싶어했다. 결국 시슬러가 투타겸업을 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데뷔 첫 해인 1915년, 시슬러는 투수로 15경기에 출전했는데, 자신의 우상 [[월터 존슨]]과 맞대결을 두번 펼쳤다. 첫 대결인 8월 2일에는 5-1 완투패를 당했다(존슨은 1실점 완투승).[[https://www.baseball-reference.com/boxes/WS1/WS1191508020.shtml|#]] 그러나 두번째 대결인 8월 29일에는 1실점 완투승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존슨은 2실점 완투패).[[https://www.baseball-reference.com/boxes/SLA/SLA191508290.shtml|#]] 시슬러는 데뷔 첫 해 투수로서 4승 4패 41삼진 방어율 .2.83의 성적을 거두었고, 타자로서는 타율 .285 78안타 3홈런 10도루 29타점을 기용했다. 본격적으로 1루수로 자리잡은 1916년, 시슬러는 타율 .305 177안타 4홈런 34도루 76타점이라는 성적을 거두며 타자로서의 재능을 만개하기 시작했다. 이 시즌까지도 투타겸업을 했던 시슬러(단 3경기 출전)는 9월 17일 다시 한번 [[월터 존슨]]과 맞붙어 완봉승을 거두기도 했다(존슨 1실점 완투패).[[https://www.baseball-reference.com/boxes/SLA/SLA191609170.shtml|#]] 이후 시슬러는 존슨과의 맞대결로 만족하고 투수로서의 미련을 접고, 완전히 타자로 전향했다.[* 물론 그 뒤로도 아주 가끔 2~3년에 한두번씩 땜빵 투수로 투구를 했다.] 다음 해인 1917년 시슬러는 타율 .353 190안타를 기록했고, 다음해인 1918년에는 타율 .341 154안타를 기록했으며, 45도루로 도루왕을 차지했다.1919년에도 타율 .352, 180안타를 기록하며 3년동안 평균 .349의 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1920년, 시슬러는 전경기를 전부 출장해 타율 .407 257안타 19홈런 42도루 122타점을 기록하며 타격왕 석권과 함께 [[타이 콥]]이 가지고 있던 248안타를 경신하면서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세웠다.[* 이는 2004년 [[스즈키 이치로]]가 262안타로 경신할때까지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이었으며, 현재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안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시슬러의 기록이 깨질 때까지 84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던 셈. 여담으로 이치로가 신기록을 달성할 때 시슬러는 이미 고인이어서 시슬러의 딸이 참관했다. 그녀는 향년 88세의 나이로 2010년에 숨을 거두었다.] 1921년에는 10타수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신기록을 세운 시슬러는[* 이는 1952년 월트 드로포가 12타수 연속 안타로 경신했다.] 타율 .371, 125안타, 12홈런, 35도루, 104타점으로 개인통산 두번째 도루왕에 올랐다. 1922년에는 41경기 연속 안타로 [[타이 콥]]이 가지고 있던 아메리칸리그 연속 안타 기록을 경신했으며,[* 후에 [[조 디마지오]]가 56경기 연속 안타로 경신했다.] 그 해 타율 .420, 246안타, 8홈런, 51도루, 105타점으로 개인통산 2번째 타격왕과 함께 개인통산 3번째 도루왕에 올랐다. 하지만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시슬러에게 비극이 찾아온다. 시슬러는 1923년 시즌을 앞두고 급성 축농증으로 인해 하나의 물체가 둘로 보이는 시각장애가 생기게 된것이다. 결국 시슬러는 1923년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다음 해인 1924년, 시슬러는 시각장애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의 감독 겸 선수로 복귀해 타율 .305, 194안타, 9홈런, 18도루를 기록했다.하지만 시슬러에게 예전의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다.1925년 시슬러는 타율 .345를 기록함과 동시에 22안타를 기록하며 다시 200안타를 치는데에 성공했다.다음 해인 1926년에는 타율 .290, 178안타를 기록했고, 1927년에는 타율 .327, 201안타를 기록했고, 27도루로 개인통산 4번째 도루왕에 올랐다. 하지만 [[볼티모어 오리올스|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데려온 루 블루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시슬러를 [[미네소타 트윈스|워싱턴 세네터스]]로 보냈다. 하지만 시슬러가 1928시즌 첫 20경기에서 타율 .245로 부진하자,워싱턴은 그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보스턴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 시켰다. 시슬러는 보스턴으로 이적해 [[로저스 혼스비]]와 함께 보스턴의 중심으로 활약했고 보스턴에서 타율 .340, 167안타를 기록했다. 1929년, 시슬러는 타율 .326, 205안타를 기록하며 다시 부활하는 듯 했으나, 다음해인 1930년 타율 .309, 133안타로 성적이 떨어지자 아무도 그를 원하는 팀이 없었다. 시슬러는 이후에도 2년간 독립리그에서 뛰었지만, 1930년을 마지막으로 끝내 메이저리그로 다시 올라오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